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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ors' Montly Columns

B.Goode 매거진 창간 기념 필자 에세이 (2) - 권석정, 조용범, 이규탁, 박현준

비굿 매거진의 창간을 기념하는 필자들의 축하 에세이 이어집니다. 이 원문 모두 비굿 매거진 제1호에 실려있습니다.

한국에서 팝음악 전문잡지를 만든다는 일은 이제 너무나 지난한 일이 돼버렸다. 그 많던 음악잡지 ‘꾼’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어디서 무얼 하든, 그들은 그들 자신을 행복하게 했던 음악을 계속 즐길 것이라 믿는다. 몇몇 독자들은 이미 알지도 모르겠지만 ‘비굿’은 얼마 전 폐간된 팝음악 전문 월간지 ‘핫트랙스’를 만들던 이들이 다시 모여 창간한 잡지다. 국내에 팝음악 전문지가 완전히 사라진 마당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핫트랙스’는 실로 단비와 같은 잡지였다. 매달 나온 팝음악들을 챙겨들으면서 그것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비굿’이 팝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동반자와 같은 책이 되길 바란다. 한국에서 팝음악을 소개하는 잡지는 정말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밤을 새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 명확한 이유를 이 지면에서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직접 듣고, 보고, 느끼라. (권석정)


1906년 12월 24일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탔다. 최초의 DJ는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성서의 한 구절을 읽었다고 한다. ‘귀에는 눈꺼풀이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으려 해도 청력이 있는 한 사람은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라디오에서 뭔가 알아내고 있었다. 기차와 종소리처럼 라디오는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을 이루는 부분이었다.” 아마 텔레비전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라디오보다 센 미디어는 없었을 것이다. 1950년대에 아직 10대였던 밥 딜런도 ‘첨단 라디오'에 푹 빠져 살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뭔가를 깨친다. “나는 음반을 내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싱글 음반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밥 딜런에 따르면 “LP판은 사람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LP판과 함께 팝 음악잡지도 세상에 나왔다. 그 세상은 변했거나 이미 없다. LP판이 뭔지 구경도 못 해 본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데 『비굿』이 나왔다. “정체성이 있고 더 크고 생생한 음을 나타낼 수 있는” LP판 같은 음악들에게 위로가 되리라. (직접 인용은 모두 『밥 딜런 자서전』에서.)

(조용범)


나는 영화를 굉장히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보고 맘에 든 영화는 DVD를 구매해서 생각날 때마다 몇 번씩 보곤 한다. 그렇게 내 마음에 든 영화 중 <High Fidelity (국내에선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의역되어 나옴)>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John Cusack 분) 원래 꿈이 ‘Rolling Stone誌의 리뷰어/기자’가 되는 것이었으나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중고 LP/음반 가게를 운영하는 음악광으로 나온다. 그가 그의 가게 점원 두 명 (역시 음악광들이다)과 심심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Top Five 놀이’인데, ‘내 인생 최고의 레코드 다섯 장’을 꼽아보면서 서로 비교하고 토론도 하는 놀이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어라, 나랑 비슷한 점이 많군!’이라는 생각을 몇 번씩이나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대중음악잡지를 읽으며 음악에 빠졌고, 또 그 잡지에 나온 리뷰들과 기사들을 보며 공감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던 기억. 그 잡지들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음반은 신작이건 예전 음반이건 어떻게든 한번 들어보려고 했던 기억. 그리고 거기에 실린 신보 소식 및 그에 관한 리뷰들을 보며 ‘이거 나오면 당장 사야지!’하고 돈 모으던 기억. 그러면서 ‘나도 나중에는 이런 저명한 대중음악잡지에 기고하는 리뷰어/평론가가 되어야지’라고 꿈꾸던 기억.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에는 이러한 ‘종합 대중음악 전문지’가 별로 없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전문지들이 있었지만, 인터넷의 시대가 되고 mp3의 시대가 되면서 대중음악잡지들은 설 곳을 잃고 거의 대부분 발행 중단 상태가 되었다. 사실, 현재 필자는 대중음악 이야기를 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나름 ‘파워블로거’라는 이름도 달면서 열심히 글도 올리고 다른 분들과 교류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인 혼자 운영하는 블로그로는 예전에 많은 우리나라 대중음악 전문지 및 해외의 유수 대중음악 전문지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런 다양성과 폭넓은 감성을 전달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있기에, 아쉬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런 대중음악 전문지를 다시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창간호 발행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장벽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다행히 이렇게 무사히 창간호를 낼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이 창간호의 필진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아직 시작은 미약하지만, 이 B. Goode이 현재의 황량한 국내 대중음악 전문지계에 한줄기 빛이자 희망이 되었으면, 그리고 이후 성공적으로 자리잡아서 점차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오랫동안 사랑 받는 잡지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필진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이규탁)


어린 시절의 나는 무척 욕심쟁이였다. 새로 장난감이라도 생기면 동생들이 그것을 만지지도 못하게 은밀한 곳에 숨겨두고 혼자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래서 만든 게 ‘비밀창고’였다. 집에서 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아끼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혼자 즐겼다. 물론 ‘비밀창고’의 유통기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런 비밀창고가 없다. 하지만, 내 방 자체가 비밀창고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을 아직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 제일은 팝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하나 둘씩 좋아하는 음반들을 쌓아두고 즐기다보니, 오늘날 팝 전문 프로그램을 제작/진행까지 하게 되었나보다. 그렇게 좋아했던 팝 음악들을 즐길 수 있기까지 여러 길라잡이가 있었지만 가장 먼저 그 옛날의 음악전문지들이 스쳐지나간다. 월간팝송, 핫뮤직, GMV등등.. 음악 관련 정보의 8할 이상을 얻었던 길라잡이였다. 인쇄매체보다는 온라인 매체가, 음반보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새로운 음악 전문지 비굿(B.Goode)의 출발이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이 되었으면 한다. K-Pop도 좋지만, K-Pop만 좋아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음악의 창고가 열리길 바라며~ (박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