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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ors' Montly Columns

B.Goode 매거진 창간 기념 필자 에세이 (1) - 윤태호, 김성환, 김두완

창간호의 컨텐츠의 일부를 차근차근 공개해 드리기 전에, 먼저 비굿 매거진의 창간을 기념하는 필자들의 축하 에세이를 소개해 드립니다. 필자들의 이 새 매거진에 대한 결의와 의지를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기 위해서에요...^^


   포스터를 얻으러 가는 횟수가 더 많았던 동네 레코드점에서 처음 음반을 샀던 게 정확히 20년 전입니다. 초라한 용돈을 꽤 오랫동안 모아서 손에 넣은 카세트테이프를 내내 만지작거리며 흐뭇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20년이 흐른 지금, 저는 시디에 붙은 스티커를 떼고 비닐을 벗기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시원한 생맥주의 첫 모금도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안고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의 그 짜릿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많은 음반을 삽니다.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음반을 사는 사람이 있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 이렇게 대답하죠. 그럼 무엇으로 음악을 듣느냐고.

  대충 계산을 해봤습니다. 제가 1년간 쓰는 음반 구입비로 음원 사이트 이용권을 구입하면 약 15년간, 그것도 ‘합법’으로 마음껏 음악을 듣고 많은 음원을 손에 넣을 수 있더군요. 그런데, 그 방식은 아직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음반을 손에 넣고 1번 트랙을 재생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는 음반과 유사한 ‘과정’이 있는 음악 잡지를 사랑해왔습니다. 지난 몇 달이 참 길게 느껴졌던 것은 그 사랑이 잠시 멎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의 시련을 딛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된 지금, 많은 것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을 기다려주신 여러분들과 함께, 조금 더 길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윤태호)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었던가. 우연히 형님이 빌려왔던 ‘월간팝송’이라는 음악잡지를 읽게 된 건,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목표 중 한 가지를 정하게 되었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팝 음악에 대한 매력은 그 시점부터 서서히 느껴가고 있었지만,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해서 소위 ‘음악 글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 것은 분명 이 음악지와 그 뒤를 이어 20여 년간 구입했던 수많은 음악지들이었다. 음악세계(와 뮤직 시티), 뮤직 랜드, 핫뮤직, GMV, SUB, ROCKIT, 오이뮤직에 이르기까지....... 그 책들이 내 방 책꽂이에 하나씩 쌓여가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책들 속에서 알게 된 수많은 음악 정보들과 그 속에 글을 썼던 수많은 선배들의 다양한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들이 쌓여 음악 관련 매체에 음악 관련 칼럼들을 기고하는 현재의 내 모습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읽는 입장에서 쓰는 입장이 되었음에도 난 지금까지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는 글’이라면 최대한 빠짐없이 읽고, 배우며, 내 생각을 가다듬고, 때로는 반론도 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렇게 날 인도해주던 오프라인 음악 잡지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5년간 글을 기고했던 GMV가 그랬듯, 지난 10월 다시 6년간 함께 해왔던 무가지 핫트랙스 매거진도 발행을 멈췄다. 패션이나 다른 문화와 얽히지 않고 ‘음악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매거진은 지난 몇 달간 록 매거진 ‘파라노이드’가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 몇 개월을 지나 편집장과 나, 그리고 이전 핫트랙스 매거진과 함께했던 다른 필자들은 그 때보다 어려운 길을 가게 되더라도 지난 6년 동안 지켰던 ‘한국의 유일한 팝 음악전문 잡지’의 명맥을 이어갈 새 매거진을 만들어가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1월의 긴 산고 끝에 2013년 2월, 마침내 이렇게 첫 책을 손에 쥘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물론 인터넷에도 좋은 새로운 음악을 전하고, 음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는 글들이 분명히 많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 속에서의 정보는 오직 전력이 공급되는 매개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낚시질’을 피해 헤엄쳐야 하는 수고를 해야 되는 것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매달 정제된 음악에 대한 정보와 대중음악을 이해하고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을 항상 내 손에 가까이 두고 습득하며 정말 ‘내 정보’로 보관해 둘 수 있는 기능을 수행하려면, 여전히 오프라인 형태의 음악 잡지가 대한민국에는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그 역할을 B.Goode이 무사히 잘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 매거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겐 ‘요새 누가 오프라인 음악잡지를 보냐’는 걱정 섞인 냉소(?)의 말도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꿈’을 ‘현실’에 이식하려는 열정과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이 작업은 계속 이어지리라 굳게 믿는다.
(김성환) 

  데스크톱 시대도 아니고, 랩톱 시대도 아니고, 이제는 모바일 시대다.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화면은 작아졌고, 오프라인 정보보다 온라인 정보를 벗 삼는 인구가 대다수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프라인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다. ‘무모한 도전’이 잘 돼서 즐거운 ‘무한 도전’이 되면 좋겠지만, 자원이 고갈되어 전기가 안통하고, 인터넷 자체가 사라지기 전까지 오프라인 잡지를 발행하는 일은 계속 무모한 ‘짓’이 될 것이다.

  특히 발행처가 한국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감히 미국과 영국을 돌아보면 롤링 스톤도 있고, Q도 있고, NME도 있고, UNCUT도 있다. 전 세계의 모든 종이 매체가 오프라인 발행을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건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미권 대중음악의 역사가 견고한 흐름을 유지했고, 그러한 음악 사이에서 잡지가 호흡했으며, 음악팬들은 음악과 잡지를 마치 밥과 반찬 대하듯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영미권 잡지의 문제는 단지 기존의 애독자가 지불을 주저한다는 점에 있다. 기나긴 검열에 치여 창작 행위가 반병신이 되고, 그러한 음악 사이에서 잡지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음악팬들이 음악과 잡지를 함께 소비하는 습관이 거의 없는 한국과는 다르다. 여러 사람의 습관이 모이고 또 모여 문화를 형성하는데, 모이는 습관이 적으니 문화가 될 수 없는 셈이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긴다. 아마 비굿은 현재 오프라인 잡지 대부분이 그러한 것처럼 단명할 수도 있고, 필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의 생각보다 더 오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끝’은 없으면 좋겠다. 온라인으로 전환해도, 무크지가 되어도 좋으니, 비굿은 전통 있는 대중음악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잡지 문화의 새로운 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매달 거의 2만원에 육박하는 영어 잡지 겨우 하나 사서 ‘아우, 부럽당~!’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창간호가 나오기도 전에 이런 걱정을 하는 지금 기분도 정말 짜증난다. 창간호에 기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말하는 게 참으로 염치는 없지만, B.Goode이 끈기 있게 살아남아 나보다 더 일찍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롤링스톤이 1967년에 창간됐으니 45세 나이라고 한다면, 그게 정말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김두완)